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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f. Dr. Mohsen Mohammad Saleh.
네타냐후는 여전히 자신이 ‘중동’을 재편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가, 아니면 특히 이스라엘·미국의 대이란 전쟁 이후 그 구상은 이미 무너진 것인가?
2023년 10월 7일 이후 네타냐후는 지속적으로 중동 재편을 자신의 핵심 목표로 제시해 왔다. 실제로 주요 연설이나 공개석상에서 그가 ‘새로운 중동’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되풀이하지 않은 경우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알아크사 홍수 작전이 시작된 지 불과 이틀 뒤 그는 이 지역을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후 헤즈볼라 사무총장 하산 나스랄라 암살 이후,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 붕괴 이후, 2025년 6월 이란과의 전쟁 당시, 알아크사 홍수 작전 2주년을 맞아서, 그리고 이란을 상대로 두 번째 전쟁을 시작했을 때에도 그는 이 목표를 거듭 확인했다. 이 밖에도 수많은 사례가 있다.
시오니즘적 팽창주의 사고방식과 중동을 재편하려는 야망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네타냐후 아래에서 이 프로젝트는 뚜렷이 다른 성격을 띠게 되었다. 무엇보다 ‘하드 파워’와 군사력의 거리낌 없는 사용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오랫동안 점진적인 ‘확장과 공고화’ 과정에 의존해 왔던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전략, 즉 보다 실용적이고 단계적인 접근 방식에서 분명히 벗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네타냐후는 시몬 페레스가 제시했던 ‘새로운 중동’ 구상을 완전히 받아들인 적이 없다. 페레스의 프로젝트 역시 이스라엘의 지역적 우위와 영향력 확보를 전제로 하고 있었지만, 정치적 현실의 제약과 정상화의 전략적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소프트 파워’에 훨씬 더 큰 비중을 두었다. 그의 지역적 확장과 영향력에 대한 구상은 서로 연계된 세 가지 차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첫째: 가능한 모든 지역에서 유대인 다수를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한, 이스라엘의 직접 통제 아래 있는 지정학적 영역.
둘째: 걸프 해역, 아라비아해,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이어지는 안보 영역으로, 이스라엘 영향력이 미치는 보다 광범위한 전략 공간.
셋째: 이러한 지리적·안보적 경계를 넘어 훨씬 더 넓게 확장되는 경제적 영역.
그러나 네타냐후는 2026년 3월 15일 이스라엘 정부 회의에서 자신의 접근법을 페레스의 비전과 대비시켜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이곳에서 새로운 중동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선언하면서, “그러나 시몬 페레스의 장밋빛 안경을 통해 본 중동이 아니다. 힘에 기반한 진정으로 새로운 질서”라고 말했다. 그는 이 과정을 “역사적 변혁”이라고 표현했다. 네타냐후는 페레스의 비전을 존중한다고 인정하면서도, 실제로 그것을 구현하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네타냐후에게 지역의 변화는 페레스와 연관된 이상주의적 ‘소프트 파워’ 접근이 아니라, 무엇보다 ‘하드 파워’에 의해 추진되는 것이다.
네타냐후의 중동 재편 구상에서 이란 정권의 전복은 핵심 요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전쟁 초기 네타냐후 본인뿐 아니라 트럼프의 발언에서도 시사된다. 전직 모사드 관계자인 사기브 아술린은 “중동을 재편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은 이미 물밑에서 내려졌으며, 미국의 목표도 이란 핵 프로그램을 억제하는 것에서 이란 정권을 전복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채널 14는 전쟁이 시작되기 하루 전인 2026년 2월 27일 이 발언을 보도했다. 또한 2026년 2월 28일 아침, 이란과의 전쟁을 승인한 이스라엘군 지침에는 “이번 작전의 목표는 장기적인 지역 변화를 이끌어내고 … 이스라엘의 전략적 균형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문제적인 용어:
계속 논의를 이어가기 전에, 이스라엘과 미국, 그리고 보다 넓게는 서방이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중동’이라는 용어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러한 용어 선택은 이데올로기적 의미와 무관하지 않다. ‘중동’이라는 용어 자체는 유럽을 세계 지리의 중심에 놓고 그 관점에서 지정학적 경계를 규정하는 논쟁적인 식민주의적 개념이다. 그 결과 이 지역의 아랍적·이슬람적 정체성을 가릴 위험이 있다. 또한 ‘중동’의 지리적 경계나 어떤 국가들이 여기에 포함되는지에 대해서도 학문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용어는 이스라엘과 그 동맹국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스라엘을 지역의 일부로 개념적으로 통합하는 데 도움이 되며, 평화 프로세스와 정상화라는 보다 광범위한 의제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점에서 이 용어는 방법론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문제가 있으며 따라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여기에서는 분석적 일관성을 유지하고, 네타냐후와 다른 행위자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용어이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성급한 승리 선언:
네타냐후는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배경뿐 아니라, 시오니즘에 ‘역사적 승리’를 가져다준 ‘위대한 지도자’로 자신을 제시하려는 강한 개인적 야망에도 영향을 받고 있다. 그는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의 저항세력을 패배시키고, 이란을 약화시키며, 정상화 협정을 확대하고, 중동을 재편한 인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 그는 이러한 성과를 자신의 정치적 유산의 핵심으로 여기며, 이를 통해 자신이 다비드 벤구리온을 비롯한 주요 시오니즘 지도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이러한 야망은 네타냐후가 끊임없이 성취감을 연출하고 승리를 선언하는 데 집착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2025년 10월 이후 그는 중동 재편을 단순히 자신의 목표로 언급하는 것을 넘어, 점점 더 그것이 이미 달성된 목표인 것처럼 묘사하기 시작했다. 올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후 그의 수사는 더욱 자신감 있고 단정적으로 변했다.
2026년 3월 29일 그는 “나는 우리가 중동의 모습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고, 우리는 그렇게 했다”고 선언했다. 4월 19일에는 “우리는 중대한 시험을 통과했다. 우리는 중동의 모습을 바꾸었다”고 다시 강조했다. 그리고 닷새 뒤인 4월 24일에도 같은 주제로 돌아와 “나는 여러분에게 우리가 중동의 모습을 바꿀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이란에서”라고 말했다.
그러나 네타냐후가 이룬 성과들은 그가 지역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중동에 ‘이스라엘의 시대’를 열었다고 주장할 만큼 충분한 것인가? 그는 과연 자신이 설정했던 전략적 목표를 실질적으로 달성했는가?
야당 지도자 야이르 라피드는 2026년 3월 31일 네타냐후의 이러한 주장을 비판하며, 이를 그가 말하는 네타냐후의 또 다른 ‘오만한 연설’의 사례라고 일축했다. 라피드는 네타냐후가 “내가 중동을 바꿨다…라고 말하지만, 결국에는 언제나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객관적 평가를 향하여:
전략 분석과 미래연구 방법론을 바탕으로 한 객관적 평가는, 추세 분석, 동인 분석, 교차영향 분석, 주요 행위자들의 행동 평가 등을 통해 네타냐후와 그의 정부가 제기해 온 주장에 도전하는 보다 광범위한 역학을 드러낸다. 이러한 추세들의 누적된 영향은, 지속적인 이스라엘의 지역 패권 가능성이 실제로 2023년 10월 7일 당시보다 약화되었음을 시사한다. 가장 중요한 지표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스라엘에 보다 유리하게 전개된 요인들
1. 이스라엘은 여전히 군사·정보·기술적 우위를 누리고 있으며, 상당한 파괴 능력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의 지정학적 위상을 주요 지역 행위자로 강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우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지역 전체에 대한 완전한 지배를 확립하거나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2. 미국은 여전히 이 지역의 지배적 강대국이자 주요 군사·안보 파트너이며, 이스라엘은 미국의 지역정책에서 계속 핵심 축을 이루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3. 이스라엘 사회는 크게 우경화되었으며, 저항운동과 이란에 맞서는 것을 포함해 이스라엘의 영향력과 지배력 확대를 계속 지지하고 있다.
4. 이스라엘은 저항세력과 ‘저항의 축’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하마스, 헤즈볼라, 이란, 예멘의 다수 고위 정치·군사 인사들을 살해하거나 암살했으며, 가자지구와 레바논 남부에 광범위한 파괴를 초래했고, 시리아·예멘·이란의 목표물에도 강력한 공격을 가했다.
5. 이스라엘은 영토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가자지구, 레바논 남부, 시리아 남서부에서의 존재감을 강화했다.
6. 이스라엘은 압도적 우위의 이미지를 투사하면서 상당한 군사·정보 역량을 과시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의식 각인’을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과 적대적 인식 자체를 바꾸는 데에는 실패했다.
7. 이스라엘은 레바논 정부와 체결한 양해각서를 통해 레바논과의 정상화를 향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
둘째: 이스라엘이 중동 재편에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요인들
1. 팔레스타인 문제: 이스라엘의 목표와는 달리, 팔레스타인 문제를 지우고 주변화하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오히려 팔레스타인 문제는 지역 및 국제사회의 관심에서 다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2.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저항: 심각한 타격을 입었음에도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은 제거되거나 주변화되지 않았다. 이들은 여전히 팔레스타인 정치구도의 유효한 행위자로 남아 있으며,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상당한 대중적 지지를 유지하고 있다.
3. 헤즈볼라와 레바논 저항: 큰 타격을 입었음에도 헤즈볼라와 레바논 저항세력은 제거되거나 주변화되지 않았다. 이들은 여전히 레바논에서 영향력 있는 행위자로 남아 있고, 상당한 군사력을 유지하며, 자신들의 지지 기반에서도 강한 지지를 계속 받고 있다.
4. 이란: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란 정권을 전복하거나 이란의 지역적 역할을 주변화하는 데 실패했다. 막대한 손실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핵심 지역 행위자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했으며, 이러한 현실은 미국조차 인정하고 있다. 또한 이란은 더 나은 경제적 전망을 확보했고,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했으며,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의 역할도 강화되었다. 동시에 이스라엘을 향한 지역적 태도도 더욱 적대적으로 변화했다.
5. 지역 동맹국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강대국이자 필수적인 안보 보증자로 인식되던 이스라엘의 이미지는 약화되었으며, 억지력과 신뢰성도 훼손되었다. 이는 특히 포위되고 황폐화된 가자지구에서 2년간 전쟁과 집단학살적 폭력을 지속한 뒤에도 저항세력을 분쇄하거나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지 못한 점, 그리고 레바논과 이란에서 선언했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점에서 두드러진다. 이러한 좌절은 이미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했거나 정상화를 검토 중인 국가들 사이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켰다.
6. ‘새로운 중동’을 구축하려는 시도의 핵심 축인 정상화 과정은 상당한 동력을 잃었으며,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키는 것 역시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이는 주로 가자지구에서의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이스라엘의 지역적 야망에 대한 아랍 정부와 대중의 우려 증대, 그리고 이스라엘의 지배가 아랍 국가안보에 미칠 영향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 데서 비롯된다. 이러한 우려는 특히 팔레스타인 주민의 강제이주 가능성과 그것이 이집트와 요르단에 미칠 파장, 그리고 지배적 강대국과 종속적 행위자 사이의 위계적 관계를 바탕으로 한 불평등한 파트너십의 위험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7. 주요 지역 국가들은 자국의 국가안보를 보호하기 위해 상호 관계 강화를 추진해 왔으며, 이는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파키스탄, 이집트 간 관계 변화에서 확인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지역의 자립성을 높이고 이스라엘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
8. 지역 국가들은 특히 중국과 러시아로부터의 무기 구매를 통해 안보 및 군사 파트너십을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해 왔다. 아직 그 규모는 제한적이지만, 이는 미국에 대한 군사·안보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줄이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그 결과 지역 안보구조에서 전통적으로 중심적이었던 이스라엘의 역할과, 지역 안보 문제의 관리에 대한 이스라엘의 영향력도 약화되었다. 이러한 추세는 이스라엘 주도의 중동 재편 구상에 도전이 된다.
9. 미국은 네타냐후의 이란 정권 전복 시도에 대해 이전보다 덜 일치된 태도를 보였으며, 이스라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란과 별도의 양해각서를 추진했다. 또한 미국 내 친팔레스타인 운동과 대이란 전쟁 반대 여론이 확대되는 가운데, 가자지구와 레바논 문제를 두고 네타냐후에 대한 압박도 강화했다.
10. 이스라엘의 국제적 이미지는 악화되었고, 이스라엘이 제시해 온 서사의 영향력도 크게 약화되었다. 이스라엘은 점차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집단학살적 전쟁의 참혹한 장면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이스라엘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되며 여러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국제형사재판소(ICC)의 대상이 된 점, 그리고 이스라엘의 행동에 대한 유럽 내 비판이 증가하면서 서유럽의 핵심적 지지가 약화된 점도 이스라엘의 국제적 위상을 더욱 훼손했다.
11. 아랍 대중의 여론은 여전히 압도적으로 이스라엘에 반대하고 있으며, 알아크사 홍수 작전은 반이스라엘 정서를 더욱 강화하고, 이스라엘과 지역 내 실질적 정상화 사이의 간극을 넓혔다.
12. 전쟁은 이스라엘의 영향력 아래 더 큰 안정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불안정한 지역 환경을 조성했다.
13. 강한 우경화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회는 상당한 비용을 감수하는 데 여전히 소극적이다. 인명 피해, 군사적 손실, 경제적 부담에 매우 민감하며, 동시에 세속과 종교 간의 깊은 분열, 정체성 위기, 지도력 문제, 그리고 분쟁을 관리하는 방식에 대한 상반된 접근법에도 계속 직면하고 있다.
14. 최근의 이스라엘 여론조사, 특히 지난 2년간 실시된 조사들은 네타냐후와 그의 연정이 2026년 10월 예정된 차기 크네세트 선거에서 패배하고 야권이 승리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이스라엘 사회 내부에서 네타냐후의 성과와, 그가 자신의 전쟁 및 중동 재편 노력의 ‘성과’라고 주장해 온 것들에 대해 점점 더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론:
이러한 추세들이 누적되어 만들어내는 영향, ‘중동’을 형성하는 주요 동인에 대한 분석, 그리고 핵심 행위자와 영향 요인 간 교차영향 분석은 전반적인 흐름이 이스라엘의 지역 패권 가능성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주요 동인은 네타냐후와 그의 정부가 구상했던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중동’은 점점 더 이스라엘의 통제를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히 벗어난 여러 요인들에 의해 결정되는 ‘종속변수’가 되고 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중동을 ‘설계’할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현재 지역 질서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 면에서 2023년 10월 7일 이전보다 오히려 더 멀어진 상태이며, 이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도 크게 낮아졌다는 점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현재의 흐름은 네타냐후가 자신이 추구해 온 야망을 실현할 가능성이 낮음을 시사한다. 그의 정치적 유산은 ‘역사적 지도자’로 격상된 인물로 기억되기보다는, 자신의 정책이 초래한 위기들, 그리고 그 위기들이 시오니즘 프로젝트 자체에 장기적으로 미칠 수 있는 부정적 파장에 의해 규정될 가능성이 크다.
First published in: Al-Zaytouna Centre for Studies and Consultations Original Source
Mohsen Mohammad Saleh:
요르단 국적(팔레스타인계), 1960년생.
• 1993년 근현대사 박사 학위 취득.
• 근현대 아랍사 교수, 특히 팔레스타인 연구(정치, 전략, 역사) 전문. 팔레스타인 정치 상황, 예루살렘 문제, 팔레스타인 이슬람 운동, 팔레스타인 저항 운동, 팔레스타인의 근현대사에 관심을 갖고 있음.
• 2004년부터 알자이투나 연구 및 자문 센터 소장 역임.
• 2019년부터 레바논 트리폴리 대학교 인문대학 평의회 과학 자문위원 역임.
• 말레이시아 국제이슬람대학교(IIUM) 역사문명학과 학과장 역임, 1994년~2004년 교수 역임.
• 1993년~1994년 요르단 암만 중동연구센터 상임소장 역임.
• 1997년 예루살렘에서 수여하는 젊은 무슬림 학자상(Bait al-Maqdis)을 수상했습니다.
• 2002년 IIUM에서 우수 교육상을 수상했습니다.
• 저서 17권을 출간했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팔레스타인의 이슬람 경향 1917–1948』, 『팔레스타인의 군대와 경찰 1917–1939』(박사 학위 논문),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방법론적 연구』, 『팔레스타인 문제: 역사적 배경과 현대적 발전』,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한 사실과 기본 원칙(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한 40가지 사실)』, 『팔레스타인 국가의 잃어버린 흔적』,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등이 있습니다.
• 동료 연구자들과 공동으로 19권의 책을 집필 및 편집했습니다. 여기에는 팔레스타인 정보 자료에 관한 두 가지 주요 참고 시리즈가 포함됩니다. – 『팔레스타인 문서 시리즈』(7권, 2005–2011) – 『팔레스타인 데일리 크로니클』
• 10권으로 구성된 시리즈 (2014~2023).
• 학술 서적에 챕터로 25편의 연구 논문을 저술했습니다.
• 학술 저널, 서적 및 편집된 논문집에 챕터로 다수의 동료 심사를 거친 과학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 《간소화된 팔레스타인 백과사전》(편집장: 압둘 아지즈 알-사이드)의 검토, 편집 및 교정 작업에 참여하여 71개 항목의 학술 자료를 작성하고 160개 항목을 편집했습니다.
• 다음을 포함하여 106권의 서적 및 도서의 편집 및 출판을 감독했습니다. – 《팔레스타인 전략 보고서 시리즈》: 13권 출간 (2005~2023); 팔레스타인 연구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참고 문헌 중 하나입니다. – 《나는 인간이 아닌가?》 시리즈(13권) 및 《정보 보고서》 시리즈를 포함하여 93권의 서적 및 도서의 학술 편집자로 활동했습니다. (30권 분량의) 저서 외에도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경험과 재편성 평가』, 『레바논 내 팔레스타인 난민 현황』, 『예루살렘 문화유산 연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1994~2013년 경험과 성과 연구』, 『이슬람 저항 운동(하마스): 사상과 경험 연구』, 『미국 외교 정책과 이슬람 세계』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습니다.
• 국내외 학술대회에서 135편의 논문과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 정치 분석, 전략 평가(상황 분석), 현대 세계의 정치 형성 및 미래 동향(독수리의 눈), 연구 및 정책 센터 설립, 팔레스타인 문제와 시오니즘 프로젝트 등 60개 이상의 교육 과정을 진행한 전문 강사입니다.
• 알자이투나 센터에서 출판한 “”학술 논문”” 시리즈의 학술 편집자(155편)입니다.
• 학술 편집자 알자이투나 센터의 “”전략 평가”” 시리즈 (136건)
• 2005년 5월 1일부터 2016년 7월 31일까지 “”팔레스타인 투데이”” 편집장 역임 (총 4,007호 발행)
• 2003년부터 2024년까지 알자이투나 센터가 주관한 컨퍼런스 및 패널 토론 77건의 의장 및 총괄
• 주요 신문 및 웹사이트에 팔레스타인 관련 학술 논문, 정치 분석, 상황 평가 등 350편 이상의 기고 활동
• 위성 채널, 텔레비전, 라디오, 인쇄 매체, 웹사이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490회 인터뷰 진행
World and New World Journal (worldnewworld.com), 22/9/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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